삶의 정수를 찾는
비행(非行)
2023년 3월 23일

시덥잖은 말장난을 좋아한다. 한 소리에 여러 뜻이 있으면 더 신이 난다. ‘비행’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말이다. 비행(飛行)과 비행(非行). 높이 비상하는 것일 수도, 이해하기 어려운 범주의 것이 되기도 한다. 보통 둘 중 하늘을 나는 비행(飛行)을 더 좋아하겠지만, 나는 왜인지 기이한 비행(非行)에 더 끌리는 편이다. 비행(非行)이라 하면 대개 ‘비행 청소년’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상한 행동’의 뜻으로 들여다보려고 한다.

비행(非行)이란 말을 들으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생각난다. 주인공 월터 미티는 세계적 잡지사 《라이프(LIFE)》에서 사진 인화를 담당하지만 기대만큼 중요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는 해고 위기를 앞두고 ‘삶의 정수(精髓)’를 담은 필름을 분실한다. 그 사진은 잡지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월터는 시시각각 공상에 빠지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인물이다. 관심 있는 사람과 대뜸 평생을 그리기도, 스파이더맨처럼 도심을 날아다니며 악당 같은 직장 상사를 처치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상에 그치던 월터의 비행(非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기 위해 술 취한 조종사가 모는 헬리콥터에서 바다 위 배로 뛰어내리고, 상어와 결투해 살아남고,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기까지 한다. 그렇게 만난 사진작가는 눈표범을 목격한 일생일대의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기회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 사진가가 담았던 ‘삶의 정수’는 그다지 특별한 장면이 아니다. 회사 앞 분수대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으며 필름을 들여다보는 월터의 모습이다. 각종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틀에 박힌 일상을 살던 월터가, 전쟁의 참혹함부터 자연의 신비함까지 모두 겪은 이에게 삶의 정수로 비쳤다니.

월터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쉬이 실행할 수 없다. 그래서 일상에 더욱 지치곤 한다. 환상적 순간을 바라며 매일을 견디는 현대인에게 영화는 말한다. 그 지루하고 뻔한 일상을 열심히 살아낸 이를 존경한다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사회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해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평범한 일상을 칭찬받을 기회도 흔치 않다. 그래서 적으려고 한다. 오늘도 무사히 보낸 걸 존경한다고. 고요히 제 몫을 해낸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운 포근한 이불 속에 당신 삶의 정수가 녹아있다고.
CREDIT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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