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포옹하지 않기
2022년 8월 10일

요즘 인기인 드라마 주인공은 고래에 특별한 사랑을 품고 있다. 온갖 고래 종류를 외우는 건 물론, 다리미를 봐도 고래와 닮았다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래를 본 적은 없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나온다. 수족관도 가보지 않았냐는 물음에, 돌고래쇼는 고래를 노예로 부리는 것이라 항변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역정을 내는 듯 말하는 모습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닿기 어려울 바다 생물을 사랑하면서, 만날 기회가 생겨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사실은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핑구’ 탓일까. 모든 조류를 무서워하면서도 펭귄만 보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에 사랑을 가득 담게 된다. 동그랗고 매끈한 몸, 흑백 조화로 어우러진 몸에 톡 튀는 색의 부리라니. 물속을 헤엄치는 유려함, 배를 깔고 눈밭을 질러간 흔적, 얼음에 미끄러져 삐끗하는 모습,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맞댄 몸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는 이런 펭귄과 포옹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절대 펭귄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만나지 않기를 꿈꾼다. 애정은 많은 걸 다짐하게 한다. 고래를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수족관조차 가보지 않은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수도 없게 다른 종(種)을 사랑해버린 것에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이만큼 사랑할 존재가 드물다는 걸 생각하면 작은 동물의 온전한 행복을 바라는 일이 우습지 않다.

지난 4월 25일 세계 펭귄의 날, 국제환경 단체 그린피스가 눈이 아닌 비에 젖은 펭귄 사진을 공개했다. 남극 온도가 갈수록 높아져 솜털도 벗지 못한 아기 펭귄 수천 마리가 빗물에 동사했다. 같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모자라 지구 반대편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귀엽고도 신비한 생명체가 죽어가고 있다니. ‘남극 눈이 조금이라도 덜 녹게 해야지’ 생각한다. ‘나 하나쯤’이라는 마음을 품기엔 이미 펭귄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은 퍼져나가는 성질을 가져서 혼자 좋아하는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그 대상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게 한다. 찰흙으로 만든 캐릭터에서 비롯한 펭귄 사랑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해 삶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된다. 사랑하기에 거리를 두겠다는 말이 낭만적 허세로 들릴지라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절대 펭귄과 포옹하지 않아야지.
CREDIT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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