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Fan Fiction)에서 영화까지
BL 열풍 거세지는 이유
2021년 10월 20일
초등학생 때, 잠에서 깨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거실에서 영화 <왕의 남자>의 ‘공길’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던 적이 있다. 남남(男男)의 사랑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들자 남자 아이돌 팬픽만한 일탈이 없었다. 당시 소수의 팬이 즐기는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BL(Boy’s Love)은 현재 웹툰과 OTT, 극장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제가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소설에서만 다루던 BL은 언제부터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들었을까.

▶ 사진 출처_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1996)>

BL의 시작 ‘팬픽’
BL은

남성과 남성 간의 사랑을 다루며 초기에는 만화와 소설로 등장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여성 작가들이 사춘기 소년의 사랑을 다루기 시작했고, 1978년 일본 매거진 <준(June)>이 BL 문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HOT와 젝스키스 등 아이돌 그룹 팬픽이 유행했다. 지금이야 모바일로 편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까지만해도 선생님 눈을 피해 A4용지에 출력한 팬픽을 반 친구들과 돌려보는 문화가 만연했다. 응답하라 시절 팬픽을 시작으로 한국에 뿌리내린 BL작품은 이후 스크린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재는 극장뿐 아니라 OTT 플랫폼 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 사진 출처_영화 <왕의 남자(2005)>

인기 배경

하위문화임에도 이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장의 원동력은 주인공들의 성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금(禁)' 로맨스를 다룬 BL과 이성애 작품에는 남녀 간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의 쾌락을 중심적으로 묘사하는 이성애 작품을 다소 폭력적으로 받아들인다. 시청자들은 대개 같은 성별의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이 작품 속 남자 주인공에게 지배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BL장르에서는 주인공이 전부 남성이라 여성들이 작품에 개입하지 않고 제삼자의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남성도 남성에게 지배 당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여성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 물론 주인공이 잘생긴 남자 두 명이라서 보는 사람도 많다.


▶ 사진 출처_영화 <후회하지 않아(2006)>

한국 퀴어(Queer) 작품의 계보
1996년

국내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된 퀴어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은 박재호 감독이 한국 전쟁 이후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성 지향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당시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중년 게이’라는 소재 탓에 국내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밴쿠버 국제 영화제 등 다양한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05년, 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해 퀴어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이후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2006)>, 김조광수 감독의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등을 거쳐 2020년 넷플릭스에서는 <컬러러쉬>,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등의 웹드라마가 제작됐다. 이어 올해 1월 웹드라마 <나의 별에게>는 공개 당일 서버가 다운되고 일본 라쿠텐(楽天) TV에서 상위 랭크에 오르는 등 BL계 K-콘텐츠로 입지를 굳혔다.

▶ 사진 출처_웹드라마 <컬러러쉬(2020)>

사회와 작품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작품을 보려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시대가 흘러 서구의 개방적인 문화가 들어온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의 인식은 외부 요인만으로 한 번에 바뀔 수 없다. BL 장르가 근래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현 사회를 마주한 대중이 자신의 사고에 직접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아직 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작품을 대하는 대중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지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글_하서빈 기자
#하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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